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인리히 5세 (문단 편집) === 반란과 즉위 ===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와 사보이아의 베르타 사이에서 다섯번째 자녀로 태어났으며, 유년기에 살아남은 아들 중에서 차남이었다. 살아남은 형제 중 장남인 콘라트[* 3남으로 태어났으나 두 형이 어린 시절 사망하는 바람에 실질적인 장남으로 성장했다.]가 후계자로서 제국을 물려받을 예정이었지만 섣부른 콘라트는 아버지에게 반역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콘라트에게 실망한 하인리히 4세는 차남인 하인리히에게 제위를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하인리히 4세는 1099년 1월 6일 [[아헨]]에서 하인리히 5세를 [[독일왕]]으로 즉위시켰다. 하인리히 4세는 아들에게 자신의 치세 동안 제국의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5세는 변덕스러운 아버지가 자신에게 확실히 제위를 물려줄지 의심을 품고 있었다. 이때 하인리히 4세의 적들이 그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부추겼다. 특히 하인리히 4세와 서임권 투쟁을 벌이던 [[교황]] [[파스칼 2세]]가 지원을 보장하면서 하인리히 5세를 교묘히 부추겼다. 결국 하인리히 5세는 황제인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하인리히 5세는 아버지를 감금하여 강제 퇴위시킨 후 정권을 잡았다. 하인리히 4세는 아들에 의해 유폐당했으나 민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그는 탈출에 성공하여 [[로렌 공국|로트링겐]]에서 다시 군사를 일으켜 왕위를 거의 되찾을 뻔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4세가 급사하는 바람에 상황은 정리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질서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쾰른]]의 시민들은 벌금형을 받았다. 그리고 [[플란데런 백국|플란데런]] [[백작]] 로베르트 2세에 대항한 원정은 이 반역자들을 그의 무릎 앞에 꿇게 만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